숄튼은 갓생을 살기로 결심했다.
숄튼은 제조업 회사에서 부품을 관리하는 직원이었다. 그는 부품의 수량을 파악하고 협력업체에 발주를 넣는 일을 했다. 나머지는 상사의 비위를 맞춰주고 부하직원들과 휴식시간에 나가서 담배를 피며 시간을 떼웠다. 초반에는 발주 실수를 하고 회사에 큰 손해를 끼쳤었는데 그 뒤로 이렇게 단순한 업무가 주를 이뤘다. 그 때는 회사에서 안짤리고 참 다행이었다 라고 생각했는데 5년 뒤에 마케팅팀에서 잘못된 정보를 줬었고 숄튼이 덤탱이 쓴거라는 걸 알았을 때 술자리에서 술병을 집어 던졌었다.
숄튼은 그 때부터 광적으로 다시 묻는 습관을 가지게 됐는데 이러한 집요함이 결국 성향으로 번지면서 불안 초조 증상을 함께 동반시켰다. 그렇게 3년 쯤 더 일을 하고보니 직장내에서 깐깐하다고 소문도 났지만 업무적으로 나무랄데 없다는 평가도 받으며 승승장구 했다. 그렇게 숄튼이 8년차쯤 되었을 때 과장진급에 떨어진 일이 있었다. 숄튼은 본인이 얼마나 잘 했는데 이런일이 어딧냐고 했지만 아무도 그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 때 쯤이었을까? 숄튼의 몸에 이상이 생겨났다. 그러면서 숄튼은 정상적인 업무 보다는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회사에 앉아있는게 누구보다 힘들었다. 그렇게 1년 쯤 지났을 때 숄튼은 더이상 이 회사에 있을 수 없었고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숄튼은 자고 또 잤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시도해보고 싶지 않았다. 몸에서 악취가 나는 것 같았다. 배도 고팠지만 힘은 없었다. 그냥 누워있었다. 바로 옆에 술이 있길래 다시 입에 넣었다. 이렇게 하면 다시 졸리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4일을 그렇게 살았을 때였다.
숄튼은 갑작스럽게 눈이 떠졌는데, 창 밖은 노을이 지고 있었고 방안은 어둠에 잠겨가고 있었다.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악취가 스멀 스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숄튼은 처음으로 방안이 무서웠다. 그래서 그는 서둘러 티비를 켰다. 무거운 분위기를 살리고자 예능 프로를 틀었다. 불도 환하게 켰다. 그제서야 방안 꼴이 눈에 들어왔다. 널부러진 술병부터 썩어서 악취를 풍기는 음식물들. 몸에서 나는 악취와 떡진 머리. 왜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일어나야 할 것 같았다.
숄튼은 청소를 시작했다. 어느새 밖은 어둠으로 휩쌓여 있었는데 그가 살고 있는 원룸 앞에 조명이 밝게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그렇다고 사람이 돌아다니진 않았다. 거주지역이니 그만큼 인적도 드물었고 퇴근 시간도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숄튼은 집안에 굴러다니는 술병을 모아 원룸 분리수거장에 버렸다. 어머나 많기도 해라.. 소주병만 30병이 나왔다. 숄튼은 땀을 뻘뻘 흘리며 집안을 청소했다. 방으로 돌아갈 때는 혹시나 냄새가 날까봐 계단을 이용했다. 현관을 제외한 모든 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 뒤에는 숄튼은 샤워를 시작했다. 덕지 덕지 난 수염도 깨끗하게 면도하고 뜨끈한 물로 몸을 데웠다.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숄튼은 상쾌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기왕 시작한거 숄튼은 집안을 깨끗히 정리해보기로 했다. 오래된 빨래는 세탁기에 밀어넣고, 이불을 들고 밖으로 나와 코인세탁실로 갔다. 엄청나게 큰 세탁조에 이불을 넣어도 공간이 남는 걸 보며 집에 가서 더 가져올까? 싶다가 피식 웃었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걸 지켜보면서 영화의 한장면이 생각났다. 까끌 거리던 수염을 만지던 버릇처럼 턱을 쓸었다가 매끈함에 놀라기도 했다. 잠시 코인세탁실 안에 있는 의자에 앉아 밖을 바라봤다.
하나 둘 얼큰하게 취해 퇴근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오늘 하루가 고됐겠지만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그들은 하루 하루를 어떻게든 버텨가며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었는데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하는 우울감이 다시금 찾아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하면 되지? 라는 생각이 더 크게 치솟았다. 왜 그럴까? 왜 갑자기 다시금 힘이 솟는 걸까? 숄튼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이상하게 해보자! 라고 생각이 들었다. 숄튼은 자리에서 일어나 산책을 하기로 했다. 사람이 많은 거리로 나왔을 때에는 새로운 것들이 보였다.
자판대에서 야채를 파는 사람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
카페에서 공부를 하는 사람들.
음식점에서 양복 앞섬을 풀어헤치고 즐겁게 웃는 사람들.
그제서야 숄튼은 왜 자신감이 생겨났는지를 깨달았다. 작은 일부터 해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자존감을 채워주는 시작이었꾸나. 집을 치우고 주변 환경을 개선하고 어제와 다른 행동을 하거나,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 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나의 마음을 채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숄튼은 과거에 본인이 하려고 했었는데 잠깐 손놨던 '갓생을 살아보기' 책을 다시금 실천해보자 결심했다.